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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게임 세계 속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실생활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실생활에서 대화할 때, 청자가 이야기를 듣지 않고 딴청을 피운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야, Dreamrugi. 내 말 듣고 있어?"라고 말이죠. 그럼 우리는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언급되는 그 순간, 화들짝 놀라며 높은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이 글은 이 효과를 어떻게 게임에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 선택주의와 칵테일 효과
앞선 글에서 우리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언급되었을 때 갑자기 집중한다고 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선택주의와 칵테일 효과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 선택주의와 칵테일 효과가 대체 무엇일까요?
선택주의란,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수많은 자극 중에서, 오직 한 가지에만 의식을 집중하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수히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눈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사물, 귀로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 코로 느껴지는 수많은 냄새 등 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이 많은 자극들을 인지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한 가지 자극만을 의식합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만, 책 주변에 있는 다른 사물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칵테일 효과는, 시끌벅적한 칵테일파티에서 우리의 이름이 들리면,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우리의 의식이 그것을 즉시 눈치채고 의식을 집중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선택주의가 여기서 한껏 힘을 발휘하여, 우리의 이름을 듣는 그 순간, 다른 소리를 모두 의식 저편으로 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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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효과 |
3. 게임 내러티브 적용 시 난관
게임플레이 중 플레이어를 언급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이 두 효과로 인해 플레이어가 게임에 더 집중하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으며, 그럼 플레이어는 자신을 언급한 게임 속 인물에게 집중하여 서사에 한층 더 깊이 몰입할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것을 적용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게임, 특히 RPG에서는 서사적으로 플레이어를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어떤 인격체를 대변하는 형태, 또 하나는 플레이어가 온전히 그 자신인 형태입니다. 전자는 위쳐3에서 플레이어가 게롤트라는 인물이 되어, 게임 속 인물들이 플레이어를 게롤트로 인지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으며, 후자는 엘더스크롤 시리즈처럼 플레이어가 누군가를 대신하지 않고 캐릭터 자체가 곧 플레이어 자신인 것이 좋은 예입니다.
플레이어가 다른 누구의 인격을 대변하는 상황이라면, 그저 플레이어가 대변하고 있는 인물의 이름을 텍스트와 음성으로 언급해주면 되므로, 두 효과를 적용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후자로 언급했던, 캐릭터가 플레이어 자신인 경우입니다. 플레이어가 몇 명이든 대변하는 인물만 언급하면 되었던 것이, 이제는 모든 플레이어의 이름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 숫자는 전 세계에 서비스하는 게임을 기준으로 하면, 몇천만 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텍스트로 보여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음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단언컨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칵테일 효과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효과는 청각에도 강력하게 작용하므로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영향력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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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쳐3 플레이어가 게임 내러티브 속 인물을 대변할 때는 그저 그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
4. 해결책 : 플레이어의 그룹화
다행히 이미 출시된 게임 중에는 이 문제를 영리하게 해결한 것들도 있습니다. 바로 게임 설정상 플레이어를 어떤 집단으로 묶어서, 그들을 언급해야 할 때 개별 플레이어의 이름 대신 그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로 통칭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튀어나옴 효과(pop out)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기를, 어떤 단어는 그 의미나 어감 자체만으로도 어떤 특별함을 가지며, 그 정도에 따라 사람의 관심을 끄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즉, 플레이어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가 너무 익숙하거나 평범한 단어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 집단을 흔히 말하는 모험가, 영웅 따위로만 언급해선 주의를 끌 수 없습니다. 그럼 잘 활용한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요?
엘더스크롤5의 경우, 모든 플레이어는 드래곤본(도바킨)이라는 운명을 타고납니다. 용의 영혼을 지닌 이들은, 용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이 게임에서 도바킨이라고 불리는 플레이어뿐입니다. 마비노기의 경우, 외부 세계에서 찾아온 새로운 인류, 즉 플레이어를 밀레시안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죽지 않고 환생을 거듭하는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며, 게임 속 인물뿐만이 아니라 게임 운영진까지도 플레이어를 밀레시안이라고 부르지요.
위 두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단어가 의미적으로도 특별한 것뿐만이 아니라, 단어의 어감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튀어나옴 효과를 잘 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단어로 플레이어를 통칭한다면, 그들을 통칭하는 단어만 언급하면 되므로 음성 표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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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플레이어를 언급할 때, 밀레시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5. 번외 : 텍스트 색상
재미있는 것은 게임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추가적인 튀어나옴 효과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텍스트를 구별하여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단어만 굵게 표시하거나 특별한 색을 적용하는 것인데, 이때 플레이어를 지칭하는 단어의 색은 이곳에서만 사용하여, 플레이어가 이 색을 봤을 때, "이 색이 등장하면 나를 언급하는 것이다"라고 학습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참고 자료
1. 서적
ㆍ마이어스의 심리학 (데이비드 G.마이어스, 네이선 드월)
2. 플레이어가 인격을 대변하는 게임
ㆍ위쳐3 : 와일드 헌트 (CD 프로젝트 레드)
ㆍ언챠티드 시리즈 (너티독)
ㆍ고스트 오브 쓰시마 (서커 펀치 프로덕션)
3. 플레이어가 캐릭터 그 자신인 게임
ㆍ엘더스크롤 시리즈 (베데스다 게임 스튜디오)
ㆍ마비노기 (데브켓)
ㆍ파이널 판타지 14 (스퀘어 에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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