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프로젝트 세일러

서사란 무엇인가 : 책 서사학 강의

1. 시작하기 전에
  게임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파생된 원래의 서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전통 문학에서의 서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서사학 강의라는 책을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전통 서사에 관해 하나씩 정리해보고, 게임 내러티브는 전통 서사와는 무엇이 다르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2. 서사의 정의
  이 책에서는 서사를 단순히 정의하면 사건의 재현 혹은 사건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어떤 글의 모둠이 단순한 글자 집단에게서 벗어나 서사라는 것을 띄기 위해서는 사건이나 행위들이 연속적이거나 일관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한, 서사narrative라는 단어는 알다gnarus말하다narro에서 파생된 말로, 이것은 서사가 단순히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도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잠시 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전통 서사의 구성
  사건의 재현, 연속으로 정의되는 서사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건과 그것을 일으키거나 그것으로부터 촉발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이 사건과 행위가 일관성 있게 연속적이면, 그것은 마침내 스토리(사건, 사건들의 연속)를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이 스토리가 사람에게 전달될 때 취하는 방식을 서사학에서는 서사담화(전달되는 형태, 재현)라고 부릅니다.

스토리와 서사담화는 다소 혼동되는 개념일 수 있는데,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스토리의 경우,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절대적인 시간 길이를 가지고 흘러가지만, 서사담화는 전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역행되거나 확장 혹은 축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 메멘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사건을 전달할 때(서사담화), 결과를 먼저 보여준 뒤 갈수록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는 시간이 역행하고 있는 것이죠. 반면, 영화를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이것을 스토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콘텐츠가 소비자에게 서사담화를 전달하면, 소비자는 그것을 통해 스토리(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인지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토리의 모든 사건이 서사담화에서 언급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나 게임에서 기저에 깔린 사건을 모두 알려주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제 블로그의 게임 내러티브 라벨을 통해 접하실 글들은 모두 이 서사담화에 관해 말합니다.)

13기병방위권 : 회상편
이 게임은 거대한 스토리를 인물들의 과거 회상 형태로 구성하여,
 플레이어가 과거와 미래의 사건을 오가며 목격하도록 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건을 크게 구성적 사건보충적 사건으로 분류합니다. 구성적 사건은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다른 사건을 이끄는 필수 사건입니다. 반면에 보충적 사건은 서사의 의미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추가되는 부가적인 사건이죠. 즉, 보충적 사건이 모두 제거되고 구성적 사건만 남아도, 스토리는 문제없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충적 사건은 없어도 되는 것일까요? 혹은, 구성적 사건이 보충적 사건보다 절대적으로 더 중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두 사건이 추구하는 목적이 다를 뿐 서로가 동등한 관계이며, 스토리의 서사성과 의미 및 감동 중에 무엇을 우선으로 두느냐의 차이밖에 없다고 합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의 대표 구성적 사건은 크세르크세스의 멸망, 이슈발전, 엘릭 형제의 인체연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스토리에서 빠질 수 없으며, 모든 사건을 이끄는 핵심 사건이죠. 반면, 보충적 사건의 경우, 엘릭 형제에게 연금술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켰던 쇼 터커 사건, 머스탱 대령이 호문클루스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갖게 하는 매스 휴즈 사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전체 서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각 캐릭터의 개성을 강화하면서 그들에게 몰입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들입니다. 이처럼 보충적 사건 역시 감동이나 의미, 인물의 변화 등을 위해서 없어선 안 되는 요소입니다.

갓 오브 워4의 구성적 사건 : 발두르의 방문

갓 오브 워 4의 보충적 사건 : 아트레우스의 손 힘을 시험하는 크레토스
   크레토스가 아트레우스를 얼마나 나약한 존재로 보는지 드러내는 사건으로,
그들의 관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구성적 사건만큼 중요하다고 봐야 합니다.


4. 서사의 다양한 전달법
  앞서 정의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사는 말하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알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는 서사의 재미를 찾기 전에 이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독자가 서사를 쉽게 받아들일지 알아야 합니다.

전통 서사에서 전달 방법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술자입니다. 서술자는 말 그대로 서사를 독자에게 설명해주는 이들로, 거의 모든 문학이 서사를 이들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작가들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한다고 합니다. 서술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일인칭 시점으로 구성하는가 하면, 주인공을 지켜보는 다른 인물로 만들어 삼인칭 시점으로 하기도, 서사 세계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다만, 영화나 연극에서는 서술자가 없는 경우도 존재하는데, 이는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사 안에 다른 서사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사 속 인물이 서술자가 되어 다른 인물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태입니다. 이것을 서사학에서는 액자 서사라고 부르며, 이것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하나의 큰 서사로 묶일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도 등장인물이 어떤 서사를 다른 인물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순간은 게임 속에 액자 서사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사학에는 곁텍스트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서사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곁가지처럼 뻗어 있는 모든 자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통 문학에서는 책의 표지나 포스터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곁텍스트도 서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서사성, 즉 서사적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게임 내러티브에 관해 연구하는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곁텍스트는 게임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전달법입니다.

갓 오브 워 4 포스터
게임 출시 전, 이 한 장의 이미지가 플레이어에게 많은 서사적 경험을 전달했습니다.
크레토스는 원래 무기는 어디에 두고 도끼를 들고 있는 것인가?
옆에 있는 아이와는 무슨 관계인가?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마지막으로는 수사학(문장의 정확한 전달이나 설득을 위한 수단을 고찰하는 학문)을 통한 전달 수단 강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방법은 총 3가지로, 인과관계 설정, 표준화 그리고 마스터플롯입니다. 

인과관계 설정원인과 그것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는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물의 기원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무엇인가 일이 발생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합니다. 이런 이유로, 필연적으로 시간이 일직선으로 흘러가는 서사에게, 인과관계 설정은 매우 적합하면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이 책에서는, 인과관계를 설정할 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심리 현상을 소개하는데 바로 "앞에 발생한 일이 원인이다"라는 함정입니다. 사람은 보통 결과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판단합니다. 이 현상을 잘 이용하면 독자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제공하여 놀라움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독자가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결과와 원인을 엮어 버린다면, 그 서사는 개연성 문제 제기를 피해갈 수 없게 됩니다.

표준화는 두서없이 나열된 사건들에 서사적 일관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잘하면 서사성이 뚜렷해지며, 그럼 설득력과 타당성이 생깁니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마스터플롯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며 우리의 가치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스토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마치 끊임없이 주입되어 세뇌된 것처럼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고 쉽게 믿어집니다. 쉽게 예를 든다면, 등장인물의 유형이나 작품의 장르가 있습니다. 전래동화 콩쥐팥쥐를 예를 들어보면, 성격이 몹시 고약한 계모와 그로 인해 고통받는 딸이라는 구성이 하나의 마스터플롯이라고 보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민족이나 지역 문화마다 가치와 정체성이 다르므로, 모든 마스터플롯이 전 세계에 통용될 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어느 국가에서는 계모라는 존재가 매우 자비로운 존재로 마스터플롯이 형성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무뚝뚝한 어른(조엘)과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엘리)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로건
마찬가지로 무뚝뚝한 어른(울버린)과 성숙하지 못나 어린 아이(로라)가 핵심입니다.

갓 오브 워 4
무뚝뚝한 어른(크레토스)와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아트레우스)가 등장합니다.
위 3가지 이야기는 이처럼 같은 마스터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서사에서 오는 재미  
그렇다면 서사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 것이며, 우리는 서사를 읽으며 왜 재미를 느낄까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물의 기원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사람이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안정화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젠가 블록 더미에 삐뚤어진 블록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고치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서사의 재미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서사에는 이라 부르는 전달되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사 세계 역시 우리가 사는 세계처럼 끝을 알 수 없으나, 한정된 분량 내에서 모든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우리는 서사를 읽을 때, 끊임없이 마주치는 틈들로 인해서 서사적 결핍(불완전성)을 느끼고, 어떻게든 이 틈을 메우려 시도합니다. 이 과정을 서사학에서는 더읽기덜읽기라고 부릅니다. 더읽기는 틈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사와 무관한 것들을 덧붙이는 것을 말하며, 덜읽기란 서사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하기 어렵거나 덜 중요해 보이는 것을 잊어버리고 배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서사를 읽을 때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안정화를 해서 서사를 완벽히 이해하고 싶은 것이죠. 작가들은 이 틈을 도구로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서사의 재미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서스펜스종결, 놀라움, 그리고 깨달음입니다. 

갓 오브 워 4에서 산으로 향하는 크레토스
아내의 유언을 이루어주기 위해 가장 높은 산으로 향하는 크레토스
 왜 하필 가장 높은 산이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이 틈이,
갓 오브 워 4 서사 재미의 큰 틀을 만듭니다.

사람은 결과를 알기 전에 경험하는 불안정과 긴장 상태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작가는 의도적으로 틈을 만든 뒤 일부로 그 틈을 메우는 것을 지연시키곤 하는데, 이때 빨리 틈이 메워지기를 바라는 욕망이 극에 달합니다. 이런 종결의 결핍 증상을 서스팬스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 매 화의 끝을 극적인 장면에서 마무리 짓는 것들이 바로 서스팬스를 이용한 것입니다.

서스팬스가 발생하면, 독자들은 어떤 종결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 기대합니다. 이때, 예측 가능한 종결을 맞이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안정성을 갖게 되어 재미를 얻지만, 만약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결을 제시한다면 놀라움이라는 재미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서스팬스 자체가 적어도 종결이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서사를 쓸 때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종결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대단히 유연해야 합니다.

서스팬스와 종결, 놀라움이 틈에 대한 기대로 생기는 재미라면, 틈으로 인한 의문이 해결되어 발생하는 재미인 깨달음도 있습니다. 독자는 서사를 읽으며 수많은 의문(여기는 어디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들은 누구인가?)을 가지며, 거기에 답을 추측한 뒤 자신의 답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인합니다. 서사에서 이러한 의문은 하나가 아니라 끊임없이 주어집니다. 이런 구성이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르가 미스터리 장르, 추리 소설입니다.

이런 재미를 주기 위해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소재가 바로 갈등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어떤 서사를 이야기할 때, 갈등이 무엇인지와 그 해결 과정 및 결말을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갈등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소재인지 말해줍니다. 서사 속의 갈등은 수많은 틈과 의문을 만들어내는 요소로써, 갈등의 종결이 곧 서사의 종결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는 갈등을 아곤이라 표현하는데, 이 아곤은 인물과 인물 간의 갈등으로 국한되지 않고 가치와 가치, 사회와 사회 등 폭넓은 범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갓 오브 워 4의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
이 둘의 부자 간의 갈등은 이 게임 서사의 주요 재미 중 하나입니다.


6. 마치며
  이것으로 전통 서사가 무엇이며,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재미를 주는지를 간략하게 알아보았습니다. 서사가 시대를 거쳐오면서 구전, 글, 영화로 전달 형태가 변화하면서 서사담화를 구성하는 방식 역시 변화했듯이, 이제 게임이라는 형태로 전달 형태가 변화한 서사는 분명 이전에 취하던 방식과는 다른 형태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게임 내러티브 라벨에서는 서사가 게임이라는 전달 형태를 취했을 때는 어떤 형태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1. 티스토리에서 넘어와 댓글을 달아봅니다. 너무나 신선하고 밀도있는 서사의 개념의 서술과 명작 게임을 예시로 한 칼럼은 탁월하게 느껴졌습니다. 꾸준히 선생님의 글을 읽고 싶네요. 매번 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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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글 블로거까지 와서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현재는 티스토리에 있는 글을 다듬어서 옮기는 작업 중이라, 다 옮기면 새로운 글을 올릴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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