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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기 전에
무슨 일이든, 백지에서 시작하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여러 레벨을 기획해봤지만, 매번 새 레벨을 만들어야 할 때는 두서없이 헤메다가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합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그동안 부딪혔던 난관들을 되돌아보고, 레벨 기획을 새로 시작할 때, 어떤 순서로 어떻게 발상해야 효과적인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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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용맹의 전당 이런 멋진 레벨을 만드려면 어떻게 발상해야 할까요? |
2. 5대 요소
저는 레벨 기획 발상을 시작할 때, 레벨의 핵심이 되는 기둥을 먼저 세워놓고 거기에서 살을 붙여나가는 형태로 작업하는 편입니다. 레벨의 뼈대가 되는 기둥은 다섯 가지로, 서사, 환경, 플레이 패턴, 공간, 동선이 있습니다.
가. 서사
여기서 말하는 서사는 크게 2가지가 나뉩니다. 첫 번째는 게임의 세계관 상에서 레벨에서 일어났던 혹은 일어나려는 사건을 말합니다. 전자는 레벨에서 벌어졌던 과거 이야기이며, 후자는 앞으로 플레이어가 이 레벨에서 겪게 될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온라인 플레이어 간의 멀티플레이 시나리오입니다. 예를 들면, 공성전에서 성문 전투 후 광장 전투를 진행한다는 플레이 시나리오가 있다면, 레벨에는 성문 및 성벽 그리고 그 너머의 넓은 광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나. 환경
레벨의 자연적, 사회적 환경을 말합니다. 자연적 환경의 경우, 지형의 험준함, 공간의 내외부 여부, 밝기, 습도, 온도, 기후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 환경은 사람에 의해 벌어지는 환경을 떠올리면 됩니다. 레벨 위에 세워진 문명의 발달 정도, 평화로운지 혹은 전쟁 중인지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 플레이 패턴
플레이어가 레벨에서 하게 될 게임플레이를 말합니다. 책 Art of Game Design에서 말한 것처럼 게임 플레이를 문제 풀이 과정이라고 본다면, 플레이 패턴은 레벨을 시작해서 최종 완료할 때까지 플레이어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는 걷기, 달리기, 점프, 기어오르기 등의 이동부터 낙하, 굴러떨어지는 돌, 위험한 웅덩이 같은 함정과 위험한 몬스터,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퍼즐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플레이 패턴은 게임의 재미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레벨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습니다.
라. 공간
플레이어가 돌아다닐 수 있는 영역들의 규모를 말합니다. 공간의 규모가 잘못 잡혔을 때, 특히, 필요한 것보다 너무 좁을 때 플레이어가 불편을 크게 체감하는 요소라서, 보통 많은 레벨 기획자들이 동선과 함께 가장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공간은 보통 플레이 패턴에 맞춰서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보스 전투라면 일반적인 곳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반면에 이동만 이루어진다면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여 좁게 만듭니다.
마. 동선
플레이어가 레벨에 입장해서 퇴장할 때까지 어떤 경로로 움직일 것인지를 말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쉽게 체감하는 부분 중 하나로, 잘못 기획했을 때 플레이어가 큰 불편을 호소하는 요소입니다. 동선은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길지도 혹은 짧지도 않게 구성해야 하는 미묘한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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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 레볼루션의 용의 심장 사원 보통 레벨의 공간만 봐도 거기서 무슨 플레이 패턴이 있을지 알 수 있습니다. |
3. 발상 순서
이제 이것들을 어떤 순서로 발상하면 좋을지 알아보겠습니다. 제 견해로는 발상 역시 앞서 언급한 순서대로 서사, 환경, 플레이 패턴, 공간, 동선 순서로 진행해야 합니다.
가. 서사
제가 서사를 가장 먼저 고려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철학에서 유명한 말 중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을 다른 이들과 구분 짓는 것은 그 사람이 걸어온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레벨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처럼 레벨도 개성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개성은 그가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달라지듯, 레벨도 그것이 지닌 서사에 따라 레벨의 개성(환경, 플레이 패턴, 동선 등)을 가지게 되므로, 가장 먼저 서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두 번째. 레벨은 서사를 위한 일종의 무대라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서사는 다른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영웅이 용에게서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든다고 하면, 용이 사는 고지대의 산(환경), 용을 만나러 가는 산길(동선), 용과의 전투(플레이 패턴), 용과의 전투가 벌어질 넓은 폐허(공간)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서사를 먼저 고려해야 게임 세계관에 적합한 레벨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 환경
서사 다음에는 레벨의 환경, 즉 지리, 생태계, 사회를 고려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레벨은 게임 서사를 위한 무대입니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할 때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게임 세계에 몰입하려면, 플레이 요소들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레벨의 환경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계곡이라면 빠르게 달려 다니거나 탈것을 타는 플레이 패턴보다는, 절벽 길을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형태의 플레이 패턴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만약 반대로 탈것이 달려다니는 플레이 패턴을 짜놓고 나중에 절벽 환경을 맞추려고 한다면, 주변 환경과 실제 플레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이 생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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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판타지14 이슈가르드 이슈가르드의 서사, 환경을 고려했으므로 그들과 어울리는 레벨이 나왔을 것입니다. |
서사와 환경이 레벨의 기저에 깔리는 배경을 잡은 것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실제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것을 고려할 순서입니다.
다. 플레이 패턴
가장 먼저 플레이 패턴을 고려합니다. 어떤 패턴이 어디서 어떻게 전개될지는 보통 서사에서 정해져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서사에서 언급되는 플레이 패턴(누구와 전투하는지, 어떤 역경을 만나는지 등)을 먼저 나열합니다. 이때, 레벨에서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플레이 타임에 비교했을 때, 서사의 플레이 패턴이 너무 적거나, 그것만으로는 재미를 줄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시나리오 기획자와 논의 후 서사, 환경, 게임 시스템을 고려하여 플레이 패턴을 추가, 변경합니다. 예를 들어, 서사에서는 계곡에 진입하여 꼭대기에 있는 보스와 결전을 치른다는 정도의 언급만 되어 있다면, 계곡 입구에서 꼭대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야생동물을 만난다거나, 위험천만한 절벽 길을 지난다거나, 매복해 있던 적을 만난다거나 하는 등, 해당 서사와 계곡 환경에서 있을 법한 플레이 패턴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플레이 패턴이 너무 반복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나치게 이동만 연속된다거나, 졸개들과의 전투만 이어진다면 게임이 지겨워지기 마련입니다. 이동을 한 번 했다면 다음에는 전투를 한 번 해줘야 하며, 또다시 이동할 때 같은 방식의 이동이 지겹다면 경사를 주거나,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등의 변화를 줘서,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새롭다고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라. 공간
공간을 잡을 때는 플레이 패턴을 가장 먼저 고려합니다. 거대한 보스와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플레이어와 보스 모두 사방으로 이동을 많이 하므로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이동만 이루어진다거나 소규모 적과의 전투가 진행된다면 공간이 협소해도 좋습니다. 공간을 잡을 때 알아두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공간이 필요한 것보다 넓은 것은 효율성 외에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필요한 것보다 좁다면 플레이가 불편해져 게임 경험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애매하다 싶으면 공간을 아예 크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공간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바로 형태입니다. 형태는 단순하게는 원형이나 사각부터 시작해서 직사각형, 타원형, 꺾인 형태 등 다양한 것이 있습니다. 이때 이 형태를 레벨의 기반 환경에 어울리면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절벽에서는 정사각형보다는 직사각형 공간이 더 어울릴 것이며, 계속 같은 모양이면 지겨우니, 중간에 봉우리를 섞어 원형 공간을 넣어주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마. 동선
마지막은 동선입니다. 서사로부터 발견할 수 있었던 구역들, 앞서 잡아 놓았던 플레이 패턴들을 어느 정도의 규모나 형태가 반영된 카드로 만들어서 이리저리 배치해보며 동선을 잡습니다. 동선이 불편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길거나 지나치게 짧으면 안 된다는 것은, 동선의 기본이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레벨의 환경 구조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앞서 예를 든 계곡을 생각해보면, 이곳에서는 기상천외한 장비나 건축물이 들어서 있지 않은 이상, 절대로 직진할 수 있는 동선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곳곳에 위험천만한 낭떠러지가 있을 것이며, 봉우리 사이를 건너가려면 곳곳에 지그재그로 연결된 다리나, 부러진 나무 등을 이용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계곡 절벽을 따라가는 구불구불한 동선이 나와줘야 환경에 녹아드는 동선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1자로 쭉 뻗은 동선으로 플레이 패턴을 배치한다면, 이것이 계곡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레벨이 탄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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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레벨 기획 학원의 목업 자료 플레이 패턴, 공간, 동선을 잡을 때 3D 툴로 실제 목업을 만들어 보면 큰 도움이 됩니다. |
4. 예시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예제로는 MMORPG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용맹의 전당 던전을 선택했습니다. 이곳은 플레이어가 군단 확장팩에서 초반에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였으며, 북유럽 신화를 게임에 맞게 풀어낸 던전입니다. 앞서 살펴본 순서대로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서사입니다. 이 던전의 서사는 플레이어가 아그라마르의 아이기스라는 고대 종족 티탄의 유물를 얻기 위해, 오딘이라는 강력한 존재에게 시험을 받는 내용입니다. 오딘은 외부 위협(여기서는 군단)에 대비하여, 우수한 전사를 선발해 용맹의 전당에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던전은 오딘의 거처를 지키는 헤임달의 관문, 선발된 전사들이 다가올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며 축제를 벌이는 봉밀주 전당, 여성 브리쿨들이 발키르가 되기 위해 시험받는 발키르 전당, 봉밀주 전당의 식량을 조달하는 영원한 사냥의 들판, 마지막으로 오딘이 있는 장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용맹의 전당은 전사들이 어디로든 신속히 파견될 수 있도록, 강력한 마력을 이용해서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이곳에서 헤임달의 시험을 돌파하고, 봉밀주 전당의 야만적인 전사들을 뚫고 지나가, 발키르의 시험 및 사냥의 시험을 완수한 뒤, 타락한 브리쿨, 스코발드를 물리치고, 오딘에게 가치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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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딘 |
우리가 이 서사를 통해 파악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발상의 순서에 따라 환경, 플레이 패턴, 공간, 동선 순서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먼저 환경, 전체적인 기후나 지형을 파악합니다. 서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다는 것과 브리쿨 종족이 있다는 것, 오딘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 레벨은 공중에 떠 있는 환경이며 브리쿨 양식의 인공물로 이루어졌고, 자연환경이 있다면 브리쿨들이 사는 환경과 흡사하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브리쿨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오딘이 있는 곳이므로, 일반적인 브리쿨의 양식보다는 더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일 것입니다.
다음은 서사 상 레벨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구역들을 플레이어의 행동 위주로 정리합니다. 먼저 플레이어가 용맹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시험할 헤임달의 관문이 필요하며, 이 장소가 전사들의 결집 장소라는 것을 보여줄 봉밀주 전당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가치를 증명할 시험을 받을 장소로 발키르 전당과 영원한 사냥의 들판이 있어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경쟁자인 스코발드와 담판을 짓고, 오딘에게 가치를 증명할 장소가 필요합니다.
이제 각 구역의 특징을 서사와 환경에 기반하여 정리합니다. 먼저 헤임달의 관문은, 용맹의 전당이 어떤 궁정이라고 생각하면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대로가 있을 것이며, 외부인이 궁정 내부로 들어갈 자격을 시험해야 하기도 하니, 외부로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한, 던전의 시작 지점인 이곳 주변을 구름바다로 가득 메우면 매우 높은 곳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봉밀주 전당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먹고 떠들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연회장 같은 느낌이 되어야 하며, 이 연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야만적인 전사라는 것을 고려하여, 술잔과 육류 음식이 가득해야 합니다. 또한, 정돈된 느낌보다는 다소 어지럽고 너저분한 느낌을 주어야 그들의 야만성이 더 잘 드러날 것입니다.
발키르의 전당은 신성한 발키르가 시험을 치르는 장소이므로, 엄숙하고 다소 차분한 분위기여야 합니다. 또한, 시험장이라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자뿐만이 아니라, 시험 대기자, 시험 통과자, 심판자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심판자이자 발키르의 수장, 에이르가 있는 곳은 다른 곳보다 더 위엄있으면서 신적인 존재가 있을 법한 장엄함을 주어야 합니다.
영원한 사냥의 들판은 사냥 컨셉에 맞게 야생동물이 뛰어놀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용맹의 전당은 공중에 떠 있는 인공물이라는 것이 걸립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블리자드는 이를 마법의 문을 통해서 이동한다는 것으로 풀었습니다. 이것도 좋지만, 그 외 방법을 제시해보자면, 용맹의 전당이 인공물만 떠있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땅덩어리가 같이 하늘로 솟아올랐다는 것으로 풀어서, 궁정 옆에 작은 정원이 있는 것으로 꾸밀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딘에게 최종 시험을 받는 장소는, 이곳이 오딘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설정에 맞게 신적인 존재가 거주하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오딘 자체가 덩치가 몹시 크므로, 그의 덩치에 걸맞은 규모감을 잡아야 그의 위엄이 더 살아날 것입니다. 또한, 이곳으로 갈 때는 "아, 이제 위대한 존재를 만나러 가는구나!"라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이것을 마법의 다리를 이용하여, 플레이어가 빛으로 변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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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의 전당 전경 서사에서 미리 환경을 파악하여 외부 공간과 구름 바다를 구성하지 않았다면, 공중 궁정이라는 느낌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이제 플레이 패턴을 배치할 순서입니다. 이곳에는 구역 단위로 총 4명의 보스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보스 패턴 자체가 추후 등장할 레이드의 예고편 역할을 할 최종 보스 오딘을 제외하면, 레벨에서 플레이어에게 학습시켜야 하는 보스는 총 셋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보스전이 셋, 패턴을 학습해야 하는 일반 전투가 셋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플레이 패턴을 설계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고민을 거쳐야 하지만, 이번에는 예시이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합니다. :-))
여기서 놓쳐선 안 되는 것은, 최종 보스 오딘이 사전 학습 구간이 없다고 해서, 그에게 가는 과정이 지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스 셋을 모두 처치했는데, 마지막 보스 오딘에게 가는 과정이 전투도 없이 그저 뛰어가야만 한다면 매우 싱겁겠지요. 블리자드는 이 부분을 캐릭터가 빛으로 변하여 마법 다리를 건너가는 형태로 구성하여 지루함을 타파했습니다. 여기에 전투를 넣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게임이 전투만 계속된다면 진행이 매우 더디고 플레이어를 지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전투하는 것이 언제나 해결책인 것은 아닙니다.
게임에서 플레이 패턴이라는 것은 전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레이 패턴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전투, 이동, 시각적 감동, 음향 효과, 영상 등)이라고 생각하고 기획에 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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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딘에게 가는 길 빛의 다리에 들어선 순간, 플레이어는 빛으로 변해 이 긴 거리를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즐거운 게임 경험은 이처럼 전투 외적인 것으로도 줄 수 있습니다. |
이번에는 공간입니다. 플레이 패턴을 고려하여 구역별로 공간의 크기, 모양을 설정합니다. 파티로 진행하는 던전이므로, 모든 전투 공간은 5인 기준으로 설정합니다. 각 구역의 보스전이 이루어질 공간은 보스와 광범위한 전투를 펼쳐야 하므로, 원형이나 정사각형에 가까운 넓은 공간을 구성합니다. 반면에 보스에게 가는 일반 전투 구간은 이동과 전투가 연속되는 장소입니다. 이 경우, 대부분의 전투가 단발성으로 끝날 뿐만이 아니라 전투로 인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므로, 공간이 정방형인 것보다는 길게 뻗은 형태인 것이 직관적입니다.
이때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 공간의 밀도입니다. 일반 전투 공간은 이동 중에 플레이어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므로, 배경 오브젝트의 밀도를 다소 높여야 합니다. 특히 던전의 시작 지점은 이곳의 첫인상이므로 더 밀도가 높아야 합니다. 반면에, 보스전 공간은 시선이 보스에게 고정되고, 주변이 너무 밀도가 높으면 보스의 가시성이 너무 떨어져서 플레이에 지장을 주므로 오히려 밀도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또한, 봉밀주 전당은 최소 3번 이상 거쳐야 하는 장소이므로 밀도를 높여야 하지만, 빛의 다리는 공간이 매우 크고 넓지만, 강제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하므로 밀도가 매우 낮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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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임달 보스전 장소 헤임달 홀로 서있지만, 보스전 장소이므로 이렇게 공간이 넓어야 합니다. 또한, 전투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변에 작은 오브젝트는 일절 없습니다. |
마지막으로 서사 및 플레이 패턴의 흐름을 고려하여 구역 단위로 이동 동선을 배치합니다. 서사에 따르면, 먼저 헤임달의 관문을 거치고,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2가지 시험을 치르며, 마지막으로 오딘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이때, 서사에서는 발키르 전당과 영원한 사냥의 들판 중, 어느 장소를 먼저 가야 한다는 제약이 없습니다. 즉, 플레이어에게 갈림길을 주어 선택의 재미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곳을 나중에 가더라도 그다음은 반드시 오딘에게로 이어져야 합니다. 블리자드는 이것을 모든 구역을 십자가로 연결하고, 그 중앙에 봉밀주 전당을 놓음으로써 해결했습니다.
갈림길이 등장했다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동선 안내입니다. 지금의 구성이면, 플레이어는 헤임달의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세 갈래 길을 만나므로, 적절한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면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못해 혼란하게 됩니다. 블리자드는 정면 방향의 오딘 거처로 가는 길은 문을 닫고 강력한 몬스터를 배치하여, 아직 이곳은 갈 수 없다고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좌우의 뚫려 있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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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의 전당 도입부의 지도 레벨 기획에서는 길이 세 갈래 이상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한다면, 동선 유도를 매우 신경써야 합니다. |
5. 마치며
레벨을 기획할 때는 고려해야 할 것이 정말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 글의 발상법은 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작업 방식을 설명한 것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절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이 글을 읽는 분들이 자신만의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는 계기와 힌트를 제공하는 가벼운 가이드라인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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