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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기 전에
모바일 MMORPG를 서비스할 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PC 게임 급 분량의 콘텐츠를 모바일 게임의 간격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뮤 오리진으로 대표되는 중국식 MMORPG의 태동기에만 해도, 질보다 양이 우선이던 시절이었으므로 업데이트 간격을 맞출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질까지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PC MMORPG처럼 개발하기에는 모바일 MMORPG는 우리가 알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리니지2 레볼루션 개발 당시, 이 사실을 간과하여 엄청난 비효율과 함께 업무량이 폭발했고, 결국 콘텐츠 업데이트가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메인 퀘스트(시나리오 전개 퀘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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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오리진과 [메인] 퀘스트 |
2. 퀘스트 구조의 변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대표되는 PC MMORPG에서, 퀘스트는 원래 필수가 아닌 선택이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메인과 서브로 구분되었으며, 플레이어가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고 다른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뷔페처럼 내가 원하는 것만 골라서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중국식 모바일 MMORPG가 유행하면서 이 퀘스트가 하나로 합쳐진 직렬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왜 이런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제 견해로는 극단적 편의성을 추구하는 중국 모바일 게임의 특징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찾아다니는 것조차 불편이라고 생각하여, 모든 것을 한 줄로 세워 놓고 버튼만 누르면 AI가 스스로 수행하게 만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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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막 모바일의 자동 퀘스트 |
3. 토끼와 사냥꾼
잠시 게임 기획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게임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기획의 목적과 의도를 세우는 것(무엇을 위한 것인가?)입니다. 건물을 짓기 전에 그것이 주거 용도인지 상가 용도인지 알아야, 거기에 맞게 도면을 그리고 건설을 시작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유명한 속담에서 말한 것처럼, 사냥꾼이 한 번에 토끼 두 마리를 잡으려고 했다가는 모두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만 분명히 노려야 합니다.
PC MMORPG는 퀘스트 유형별로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메인은 시나리오의 재미, 서브는 캐릭터의 부수적인 성장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시나리오 재미 토끼를 잡기 위해 메인 퀘스트 사냥꾼을 고용하고, 캐릭터 부수적 성장 토끼를 잡기 위해 서브 퀘스트 사냥꾼을 고용한 것이죠. 그런데 중국식 모바일 MMORPG가 유행하면서 퀘스트들이 하나로 합쳐지자, 덩달아 목적까지 합쳐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서브 퀘스트 사냥꾼은 해고되고 메인 퀘스트 사냥꾼이 토끼 두 마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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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별로 구분되어 있는 PC 마비노기의 퀘스트 |
4. 정반대로 뛰어가는 토끼 두 마리
중국식 모바일 MMORPG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게임은 메인 퀘스트의 질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죠. 게임 시나리오를 전개하고는 있으나 재미는 뒷전이었고, 캐릭터 성장과 시스템 가이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다른 개발사에서 메인 퀘스트에 시나리오 재미와 퀘스트의 질까지 챙기려고 하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냥꾼은 한 명인데, 토끼 두 마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것은 대단한 난제입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는 메인과 서브 퀘스트의 목적이 정말 다르므로 접근 방식도 다르기 때문인데, 그 중심에는 2가지, 수량과 비용이 있습니다.
게임 핵심이 시나리오라면, 메인 퀘스트 작업 과정은 영화 제작을 방불케 합니다. 딱 필요한 수만큼의 퀘스트만 제작하여, 행여라도 불필요한 이야기가 들어가서 이야기가 난잡해지거나 지루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비용은 게임 콘텐츠 중 가장 비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을 감수하고 수많은 컷신, 영상, 전용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제작하며, 성우를 섭외하여 녹음까지 진행하지요.
그러나 서브 퀘스트의 목적은 성장, 즉 밸런스에 더 치중되어 있습니다.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수량을 수백 개까지 늘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에서 자동 기능을 지원한 뒤로는 콘텐츠 소모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많은 수량이 필요해졌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퀘스트 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화될 수밖에 없겠지요.
필요한 분량만 만들어 최대한의 비용을 써야 하는 메인 퀘스트와, 필요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수량을 늘려야 하므로 비용을 최소한으로 써야 하는 서브 퀘스트. 그야말로 정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는 두 마리의 토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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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향으로 도망가는 토끼 두 마리 |
5. 터져나오는 문제
리니지2 레볼루션을 시작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수많은 국산 모바일 MMORPG는 이 문제에 대해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요. 이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중국식 MMORPG처럼 시나리오를 포기하는 방법입니다. 슬프게도 개발사 대부분이 시나리오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므로 보통은 이 길을 갑니다. 콘텐츠 기획자로서는 정말 자존심 상하고 자괴감을 많이 느끼는 방법인데, 이 때문에 회의감에 빠져서 프로젝트를 떠나는 기획자를 본 적도 있습니다. 플레이어 역시 게임 경험이 좋을 수 없으므로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겠지요. 이런 이유로 흔히 양산형 게임이라 불리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서브 퀘스트를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다시 PC MMORPG처럼 해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방법입니다. 얼핏 보면 정답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중국식 메인 퀘스트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미 서브 퀘스트의 목적을 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목적의 서브 퀘스트를 추가하면서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두 번째는 모바일 MMORPG 플레이어의 UX(유저 경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 대부분은 모바일 MMORPG를 중국식으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그들이 좋든 싫든 퀘스트 버튼 하나로 진행하는 구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PC MMORPG처럼 일일이 찾아서 해야 하는 서브 퀘스트를 제공해도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므로 와 닿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적절한 가이드를 제공해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그것조차 제공하고 있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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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오리진의 퀘스트 퀘스트를 위한 퀘스트를 만들 것인가, 재미있는 퀘스트를 만들 것인가? |
마지막은 메인 퀘스트 전체를 고품질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시나리오 기획자들이 입에 칼을 물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죠. 실제로 리니지2 레볼루션 콘텐츠 파트에서 시도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획자들의 희생정신을 생각하면 훌륭한 결과가 있어야 하겠지만 슬프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이 이유는 모바일 MMORPG 퀘스트 문제의 핵심을 담고 있으므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는 토끼 : 성장 밸런스
플레이어들이 특정 시점에 도달했을 때, 기획자가 의도한 수준까지 성장해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는 플레이 타임과 보상이라는 두 요소가 필요합니다. 어느 분량(시간)을 플레이하면 이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 정도 보상이면 이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식이죠. PC MMORPG는 이것을 보통 서브 퀘스트로 제공했습니다. 메인 퀘스트를 하다가 어려우면 잠시 서브 퀘스트를 하고 되돌아오면 되었고, 이 퀘스트는 메인과는 별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제공했죠.
하지만, 모바일 MMORPG에서 퀘스트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메인 퀘스트가 충분한 플레이 타임과 보상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심지어 밸런스는 한번에 결정되는 것도 아녀서 수량이 늘었다 줄었다 하기까지 하지요. 즉, 불필요한 내용이 갑자기 껴들거나 내용을 덜어내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시나리오는 난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당장 적장의 목을 치러 가야 할 상황에서 갑자기 "잠깐! 가기 전에 주변 적을 더 정리하고 가자"라고 말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나. 또 한 마리의 토끼 : 튜토리얼
게임에는 재미를 위한 수많은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잘 활용해야 게임의 재미를 100% 느낄 수 있으므로, 게임은 플레이어를 위한 다양한 튜토리얼을 준비하는데, PC MMORPG에서는 보통 별도의 가이드 시스템을 마련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MMORPG에서는 보통 메인 퀘스트를 튜토리얼로 활용하는데, 문제는 이것이 테스트를 거치면서 계속 바뀐다는 것입니다.
게임 개발 시, 시나리오는 초반, 튜토리얼은 후반 작업입니다. 즉, 완성된 시나리오에 튜토리얼을 끼워 넣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한 번으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수없이 반복되며, 그때마다 튜토리얼의 제공 시기가 달라지기까지 합니다. 결국, 시나리오 수정이 무수히 반복되어 작업 비효율과 함께 개연성은 엉망이 되고, 뜬금없는 사건이 들락날락하면서 시나리오는 말 그대로 누더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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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 레볼루션의 튜토리얼 퀘스트 |
다. 모호한 타겟층 :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람은 보통 무언가 할 때 목적을 가지고 하기 마련입니다. 배고파서 음식을 먹고, 건강해지려 운동을 하는데, 이것은 게임도 다르지 않습니다. 던전 플레이는 보물을 얻기 위한 것이며, 길드는 친목을 도모하거나 힘을 모으기 위한 것이죠.
그렇다면 퀘스트는 어떨까요? 과거, 플레이어는 시나리오가 궁금하면 메인 퀘스트를 했고, 추가 보상을 얻기 위해 서브 퀘스트를 했으며, 개발자도 거기에 맞춰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퀘스트가 합쳐지자 한 종류로 여러 욕구를 만족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나리오에 관심 없어도 강제로 대사와 연출을 보게 되었으며, 시나리오를 보는 이는 불필요한 시간 끌기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플레이어는 메인 퀘스트를 해야 하는 바람직한 목적을 상실했고, 개발자는 관습적으로 퀘스트를 만들 뿐,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적절한 방법으로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라. 부족한 시간과 인력
퀘스트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 작업일까요? 제 경험상 이것은 비용 상위권에 드는 콘텐츠입니다. 시나리오 기획자가 시놉시스와 대사를 쓰고, 스크립터가 데이터를 작성하며, 레벨 기획자가 맵을 기획하고 아티스트가 제작하는 기간만 생각해도, 리니지2 레볼루션을 기준으로 영지 하나를 만드는 동안 던전 2~3개는 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퀘스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강력한 보스나 던전 등, 콘텐츠 기획자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바일 MMORPG로 넘어오자 콘텐츠 업데이트 주기가 짧아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콘텐츠별로 우선순위를 정해서 작업을 해야 할 텐데, 메인 퀘스트는 RPG의 기반 콘텐츠이므로 후순위로 둘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질을 올리기 위해 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면, 작업 시간이 부족해져 다른 콘텐츠의 업데이트가 밀리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이유 때문에 모바일 MMORPG의 메인 퀘스트 전체를 고품질로 만드는 것조차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을까요? 이 문제를 해결한 게임은 전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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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 레볼루션의 혈맹 던전 크루마 코어 이후 1년 이상 업데이트가 없었던 것은 메인 퀘스트의 영향이 컸습니다. |
6. 해결책 : 앞서 나간 다른 장르들
생각해보면 의외로 해결책은 단순합니다. 그저 퀘스트를 다시 분리한 뒤, 메인 퀘스트는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만들고, 서브 퀘스트는 가벼운 내용으로 밸런스에서 필요한 만큼 많이 만들면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방법입니다. PC MMORPG의 방식이 더는 모바일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앞선 문단에서 확인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고민을 이미 했었고, 현재는 나름 해결한 것처럼 보이는 장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바일 MORPG입니다. 이 장르 역시 무수히 많은 스테이지를 차례로 진행하는 직렬형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현재의 모바일 MMORPG처럼 시나리오를 여기에서 전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장르를 개발하던 개발사들 역시 문제를 인지했는지 몇 가지 해결책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메인 퀘스트로 생각했던 스테이지에서 시나리오를 빼버리고, 시나리오 콘텐츠를 별도의 서브 콘텐츠로 추가하는 방법입니다. 한국, 대만, 일본 게임 각각의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경우, 넷마블에서 출시한 모바일 액션 MORPG, 레이븐이 있었습니다. 2015년 3월에 출시된 이 게임은, 그때 당시라면 아직 모바일 RPG의 표본이 많이 있지도 않을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스테이지에 시나리오를 붙이는 것의 문제를 예측했는지, 왕궁이라는 별도의 시나리오 던전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반 전투 콘텐츠에서는 시나리오를 과감하게 제거하여, 시나리오와 일반 전투가 서로 발목을 잡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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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마블 에스티(현 넷마블 몬스터)의 레이븐 시나리오형 던전을 따로 제공했던 왕궁은 매우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
대만에는 레이아크에서 2018년에 출시한 수집형 턴제 RPG, 스도리카가 있습니다. 이 게임 역시 스토리 모드와 성장을 위한 지역 탐색, 도전 콘텐츠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레이븐과 스도리카의 차이점은 두 가지입니다. 레이븐은 분리해도 여전히 콘텐츠의 중심이 전투였습니다만, 스도리카는 명확하게 시나리오를 목표로 잡고, 많은 대사, 다양한 스토리텔링 연출을 넣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성장 욕구를 저하시켰기 때문에 좋은 결정이었다고 할 순 없지만, 모바일 게임의 캐릭터 성장이 매우 더디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내 캐릭터가 아닌 시나리오 캐릭터를 사용하게 하여 성장과 상관없이 시나리오를 계속 볼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레이아크의 수집형 RPG 스도리카 시나리오만을 위한 스토리 콘텐츠를 따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 일본은 사이 게임즈에서 2018년에 출시한 프린세스 커넥트 리다이브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이자 정답인 해결책의 실마리를 제시한 게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 역시 시나리오를 별도의 콘텐츠로 제공합니다만, 앞선 두 게임과 다른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나리오 콘텐츠의 개방을 스테이지에서 제어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나리오를 보기 위해선 메인 콘텐츠인 스테이지를 진행하도록 하여, 스도리카의 성장 욕구 저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성장이 더뎌서 시나리오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은 시나리오를 짧은 에피소드 단위로 구성하여 스테이지 챕터를 하나 깼을 때, 에피소드 전체를 열어주는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또한, 시나리오 전체 내용을 다시 볼 수 있는 다시보기 콘텐츠가 접근성 높게 잘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지난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쉽게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나리오 콘텐츠에서는 전투 콘텐츠를 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시나리오 콘텐츠는 마치 비주얼 노벨을 읽는 것처럼 대화와 연출만이 연속됩니다. 이렇게 들으면 RPG에서 전투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효과가 뛰어납니다. 시나리오 다시보기를 할 때, 전투 없이 가볍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 것은 물론이며, 전투와 장소, 동선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신다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재미있게 봤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면 됩니다. 어떤가요? 계속 전투만 연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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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게임즈의 프린세스 커넥트 리다이브 전투 없이 시나리오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7. 모바일 MMORPG에의 적용
이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오는 반론은 이 게임들이 MMORPG가 아녀서 표본으로 삼기 좋지 않다는 것인데,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것은 이 장르도 과거에는 MMORPG처럼 메인 스테이지 콘텐츠에 반드시 시나리오를 붙여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듯이 지금은 아무도 MORPG에서 시나리오를 별도로 제공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것을 MMORPG의 UX에 적용하는 방법이 있는가입니다. 맞느냐 안 맞느냐는 그 고민을 해보고 난 뒤에 해야 하지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게임 초반 구간은 중국식 모바일 MMORPG 퀘스트 구조를 유지하면서 전체 퀘스트를 고품질로 제작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플레이어의 UX를 무시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모바일 MMORPG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은 이미 메인 퀘스트에서 시나리오, 보상, 튜토리얼을 습득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빠져 버린다면 적응을 못 하거나 어색함을 느껴서 게임을 이탈할 위험이 있습니다. 초반 구간이 지나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적응했다고 판단되는 시점이 오면, 그때 시나리오를 메인 퀘스트에서 분리하여 별도의 콘텐츠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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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기획할 때는 UX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메인 퀘스트에서 시나리오를 분리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메인 퀘스트가 시나리오 담당이었으니 서브 퀘스트를 분리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왜 시나리오를 분리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모바일 MMORPG의 메인 퀘스트 시나리오에 대한 부정적인 UX 때문입니다. 메인 퀘스트는 플레이어에게 어떤 콘텐츠일까요? 시나리오를 보기 위한 것일까요? 성장을 위한 것일까요? 정답은 플레이어 성향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 성향의 플레이어에게 메인 퀘스트는 만족스러운 콘텐츠일까요? 성장이 목적인 플레이어에게는 만족스러운 콘텐츠일 확률이 높습니다. 캐릭터 레벨에 맞춰 적절한 사냥터를 안내해주고, 전투를 통해 자신의 성장을 체감하면서 보상도 충분히 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시나리오를 보는 플레이어에게는 끔찍한 콘텐츠일 확률이 높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불필요해 보이는 내용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흐름을 끊는 레벨 제한이 등장하는데, 이 제한은 심지어 시나리오와 전혀 상관없는 시기일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이미 자리 잡은 부정적인 인식은 쉽게 돌리기 어려워서, 새 콘텐츠를 제공하여 좋은 인식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시나리오 콘텐츠의 중요도가 기반 게임 플레이에 비하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메인 퀘스트는 수많은 목적 때문에 업데이트를 놓칠 수 없는 기반 콘텐츠입니다. 반면에,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시나리오의 재미는 기반 콘텐츠는 아닙니다. 게임의 본질은 게임 플레이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나리오 때문에 메인 퀘스트 업데이트가 지연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재미는 짧은 시간에 공식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개발을 하다 보면 지연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때문에 시나리오를 메인 퀘스트에서 분리해야 하지요. 앞서 예시를 들었던 MORPG들이 스테이지를 성장 콘텐츠로 유지하고 시나리오를 별도로 제공한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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