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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기 전에
학습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파블로프식 조건형성과 조작적 조건형성 2가지를 말하지만, 여기서 파블로프식 조건형성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심리학에 의하면, 파블로프식 조건형성은 종의 생존이나 본능에 관련된 것일 경우(예를 들어 식사)에만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간접 체험으로 이루어진 게임에서는 효과가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 조작적 조건형성과 게임
조작적 조건형성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이것을 게임에 잘 접목해보려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팔팔 끓고 있는 주전자를 맨손으로 만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뜨거워서 손을 재빠르게 뺄 것이며,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부터는 주전자만 봐도 괜히 조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예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 속성 몬스터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멋지게 몬스터에게 불덩이를 날리지만, 피해를 주기는커녕 몬스터가 불덩이를 맞고는 더 강해지고 맙니다. 그리곤 다음부터는 이 몬스터를 만났을 때는 불 속성 마법을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런 형태의 학습을 우리는 조작적 조건형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예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실과 게임 모두 유사한 학습 형태를 가지고 있죠. 그러므로 게임 기획자는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제시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조작적 조건형성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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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뜨거운 주전자와 게임의 불 속성 몬스터 모두 조건적 조건형성이 가능합니다. |
3. 조작적 조건형성
가. 간단 개념
그럼 이번에는 책 마이어스의 심리학의 내용을 토대로, 조작적 조건형성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조작적 조건형성이 무슨 말인지 알아야겠지요?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정 환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행동과 그 행동에 의해 초래되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결과가 연합되어 추후의 행동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형태의 학습"
- 네이버 지식백과
이 말을 더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조작, 반응), 그 행동으로 인해 얻은 결과가 나쁘면 다음부터는 그 행동을 하지 않고, 좋으면 그것을 더 많이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우리가 직접 행동한 것으로부터 학습했기 때문에 조작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경험으로 인해서 다음에 같은 환경을 다시 마주했을 때, 우리의 몸이나 두뇌가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기 때문에 조건형성이라고 하는 것이죠.
나. 필요 요소
조작적 조건형성을 위해서는 3가지 필요 요소, 자극, 행동(반응) 그리고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자극은 우리에게 가해지는 환경입니다. 자극이 주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이 자극이 기분 좋은 것이라면 더 받아들이려 할 것이며, 불쾌한 것이라면 자극을 없애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환경에 가하는 행동입니다. 마지막으로 결과는 우리의 행동으로 얻게 된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자극에 가한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연합함으로써 학습하는 것이죠.
앞서 예시를 들었던 불 속성 몬스터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더 쉽습니다. 불 속성 몬스터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환경, 즉, 자극이 되겠지요. 그럼 우리가 그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불덩이 마법은 행동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몬스터가 피해를 보지 않고 오히려 강해진 것은 결과에 해당하겠지요.
"이 자극에 이런 행동을 하면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구나!"
"불 속성 몬스터에게 불덩이로 공격하면 몬스터가 더 강해지는구나!"
다.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재미있게도 조작적 조건형성을 이용하면, 행동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각각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라고 부릅니다. 정적 강화는 행동 뒤에 얻은 결과로 좋은 것 혹은 이득이 되는 것을 제공하여 행동을 더욱 유도합니다. 두 번째는 부적 강화라고 하며, 부정적인 자극을 먼저 제공한 뒤 의도한 행동을 했을 때 자극을 감소 또는 제거하여 행동을 유도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정적 강화에서는 상을 받았다면, 부적 강화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던 것(혐오 사건)을 제거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히 부적 강화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것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는 전혀 다르지만 매우 혼동하기 쉬운 개념인데,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예시는 숫자를 통한 예시입니다.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를 숫자로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평범한 상태를 0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정적 강화는 결과로 좋은 것을 얻는 것이므로, 행동을 마치고 나면 우리의 상태는 최소한 1이 되어야 합니다. 즉, 원래 상태보다 더 좋아진 것이죠. 반면에 부적 강화는 어떨까요? 이것은 혐오 사건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먼저 처음 우리의 상태는 -1이어야 합니다. 원래 상태보다 좋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의도된 행동을 마치고 나면 혐오 사건이 제거되므로 우리의 상태는 0 또는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눈치채셨나요? 요점은 원래 우리의 상태이죠!
숫자와 친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예시로는 몬스터헌터에 등장하는 몬스터 두 종을 가지고 실제 예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게임에는 네르기간테라는 몬스터가 있습니다. 이 몬스터는 평범한 바위 지대에서 서식하면서 머리에 거대한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 뿔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파괴하면 희귀한 재료를 얻어 아주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편, 이 게임에는 테오라는 몬스터도 있는데, 이 몬스터의 둥지는 용암 지대에 있기 때문에 그냥 들어갔다가는 순식간에 타죽고 맙니다. 하지만 쿨드링크라는 약을 먹으면 열기를 버틸 수 있게 되지요.
어떤가요?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가 구분되셨나요? 평범한 바위 지대(0의 환경)에 사는 네르기간테의 뿔을 공격(행동)함으로써 강력한 무기(1의 결과)를 얻는 것은 정적 강화입니다. 반면에 용암 지대(-1의 환경)에 사는 테오를 만나기 위해 쿨드링크 약을 먹어서(행동) 열기를 버티는 것(0의 결과)은 부적 강화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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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부러진 네르기간테와 용암에 서식하는 테오 |
4. 조작적 조건형성 제대로 활용하기
조작적 조건형성이 무엇인지 이해했으니 우리는 이제 이것을 게임의 곳곳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이해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활용할 수 있는지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게임을 하면서 깨달은 활용법과 실무를 경험하면서 알게 된 것을 공유해보겠습니다.
가. 자극과 결과 적극적으로 알리기
던전이나 몬스터 테스트를 하다 보면 테스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거나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자주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사례가 조작적 조건형성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경우에도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는 모두 자극에 가하는 행동의 결과로 학습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들여다보면, 놓쳐선 안 되는데 중요한 사실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지입니다. 즉, 성공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우리가 자극과 결과를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심리학에서는 효율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선 행동 후 즉각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 간격으로 0.5초를 추천합니다. 정리하면, 플레이어가 자극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결과 역시 행동 후 즉각 제공하면서도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 공격에 내성이 있는 몬스터를 학습시켜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기획자는 "물리 공격은 피해 10을 주고, 마법 공격은 피해 30을 준다." 정도의 수치적 접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플레이어가 피해량 수치를 보고 학습하리라 판단한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만 구성하면, 플레이어 대부분은 어찌 되었든 물리 공격이 통하므로 마법 공격을 시도할 생각조차 못 합니다. 왜냐하면 게임이 물리 공격은 좋지 않다는 결과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안내해야 할까요? 일본 개발사 레벨5의 니노쿠니의 경우, 효과가 떨어지는 속성으로 공격을 했을 때는 피해량을 표시하는 글자의 색을 다르게 하면서, 또한 효과 있는 속성으로 공격하면 몬스터가 기절하도록 하여 적극적으로 안내했습니다. 국내 개발사 데브켓의 마비노기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안내했는데, 몬스터가 면역을 가지고 있는 공격을 시도하면, 몬스터의 몸이 빨갛게 "번쩍"(시각)하면서 "팅!"(청각)하는 공격적인 소리를 재생합니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공격을 받으면 몸이 경직되지만, 이 경우에는 경직하지 않습니다.
보통 기획자가 플레이어의 행동에만 집중하다 보면, 보스의 자극과 행동의 결과가 제대로 인지되는지에 대한 부분을 많이 놓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작적 조건형성을 위해선 결과까지 인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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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의 나이트메어 휴머노이드는 조작적 조건형성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나. 부적 강화 조심하기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 중 더 효과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는 부적 강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정적 강화는 행동을 하기 전에 상태가 0이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어 학습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부적 강화는 혐오 사건을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 학습을 시도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보면 부적 강화를 사용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게임에서 부적 강화에 너무 의존하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플레이어 대부분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재미있어지고 싶어서,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하며, 이것은 모두 기쁜 경험입니다. 하지만 부적 강화를 위해선 혐오 사건, 즉 부정적인 경험을 먼저 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플레이어의 상태가 안 좋아진다는 것은, 의도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게임을 더 진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쁜 경험이 계속되면 최악의 상황에는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플레이어의 이탈에 민감한 대중 게임은 정적 강화를 많이 사용합니다. 몬스터를 그냥 때려잡아도 되지만, 올바른 속성으로 공격한다면 더 빨리 잡을 수 있는 형태로 말이죠. 하지만 게임이 너무 정적 강화 위주가 되면 전체적으로 너무 쉽거나 밋밋해집니다. 따라서 부적 강화를 쓰되, 플레이어가 이탈하지 않도록 강도와 빈도를 조절하며 조심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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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 강화의 대명사, 다크 소울1의 첫 번째 보스 <수용소의 데몬> 이 몬스터를 잡기 위해선 정면 대결을 피하고 옆의 문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게임 시작과 동시에 이탈합니다. |
다. 기대성 : 결과를 한층 더 강화하기
심리학에서는 학습의 결과가 예측 가능할수록 반응이 더 강력해진다고 합니다. 이것을 기대성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학습했던 조건적 조건형성이 벌어질 것을 알아차렸을 때 느끼는 심리 효과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포 영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귀신이 아무런 예고 없이 튀어나온다면 깜짝 놀랄 수도 있지만, 너무 당혹스러워서 상황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귀신은 예고 없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등장을 예고하는 음산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영화 속 인물은 수상한 장소에 들어가려 하거나, 불길함에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장면이 먼저 나옵니다. 이때 우리는 "안돼...! 제발 그러지 마!"라고 마음속 비명을 외치면서 집중을 하게 되고, 이윽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귀신이 등장하면, 충격은 배가 되는 것이죠.
게임은 워킹 데드의 문 트릭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플레이어는 "문 뒤에는 위험한 것이 있다"는 것을 학습합니다. 닫힌 문을 만났을 때, 플레이어의 심리는 이전에 학습했던 것 때문에 "문을 열면 분명 좀비가 있을 거야"라는 예상을 하기 시작하여 기대성을 한껏 발휘합니다. 또한 문을 조작 한 번으로 여는 것이 아니라, 1번의 재확인 조작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기대성은 극에 달하게 되죠. 이윽고 문을 열었을 때, 결과가 무엇이든 플레이어의 심리는 바로 열었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자극을 길게 주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게 할 필요도 있습니다. 턴제 RPG에서 보스가 강력한 공격을 하기 전에 몇 턴의 준비 시간을 갖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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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데드의 문은 2번의 조작을 거쳐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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